“봉사는 의료인 삶의 기본”
전쟁 상흔 얼룩진 아프리카행 자원…인술 베풀어
2년째 병원장 맡으며 해외 의술활동 지원 적극적
“머릿속 좁은 세상 버리고 폭 넓은 선택을” 강조
의학과 재학 시절부터 아프리카를 꿈꾸던 젊은이가 있었다. 그곳에 가서 아프고 병든 사람을 돌보며 의술을 펼치고 싶다고 다짐했던 젊은이는 바로 전주예수병원장 김민철(의대·80년 졸) 동문.
김 동문은 지난 94년 전쟁으로 황폐해진 아프리카 르완다를 처음 방문한 이래 멀고 낯선 이국 땅 아프리카의 콩고, 케냐, 우간다 등을 다니며 따뜻한 인술을 베풀었다. 특히 지난 2000년부터 4년 동안 가족들과 나이지리아에 거주하며 현지민을 돌보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갖고 있던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게 됐다”고 말하는 김 동문. 끼니 해결은 고사하고 콜레라로 죽어 가는 난민들에게 “식후 30분 후에 먹으라”고 건네는 약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가를 깨달은 것이다.
이때부터 김 동문은 아프리카에서 ‘의사’이자 ‘주방장’, 그리고 ‘선생님’이 되기도 했다. 진료뿐만 아니라 굶주린 환자들을 위해 음식을 구하러 다니고 그들에게 식사 제공했다. 의사의 진료와 처방보다도 근본적으로는 물을 정화하는 시설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식수 해결을 위해서도 직접 나섰다.
또한 “병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좋게 만들기 위해 예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의사의 의무”라고 생각한 그는 건강에 무지한 그들에게 살균이나 ADIS에 대한 교육도 함께 했다.
이후 2004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김 동문은 전주예수병원 원장을 맡게돼 2년째 맡은바 임무를 다해내고 있다. 리더로서 병원을 이끄는 일은 물론이고 직접 떠나지는 못하지만 파키스탄 지진 때 의료봉사 팀을 꾸려 보내는 등 직원들의 해외봉사활동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한 문화권에 갇힌 좁은 세상에서 살지 말고 자신 스스로 폭넓은 세계로 나오길 바란다”는 김 원장. 이것이 그가 의사로서 지위와 명예를 뒤로하고 아프리카로 떠날 수 있었던 용기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봉사는 의료인들의 삶이다”고 말하는 김 동문은 오늘도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을 멈추지 않는다.
전북대신문 우리나라 기자 wrnr@chonbuk.ac.kr
전쟁 상흔 얼룩진 아프리카행 자원…인술 베풀어
2년째 병원장 맡으며 해외 의술활동 지원 적극적
“머릿속 좁은 세상 버리고 폭 넓은 선택을” 강조
의학과 재학 시절부터 아프리카를 꿈꾸던 젊은이가 있었다. 그곳에 가서 아프고 병든 사람을 돌보며 의술을 펼치고 싶다고 다짐했던 젊은이는 바로 전주예수병원장 김민철(의대·80년 졸) 동문.
김 동문은 지난 94년 전쟁으로 황폐해진 아프리카 르완다를 처음 방문한 이래 멀고 낯선 이국 땅 아프리카의 콩고, 케냐, 우간다 등을 다니며 따뜻한 인술을 베풀었다. 특히 지난 2000년부터 4년 동안 가족들과 나이지리아에 거주하며 현지민을 돌보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갖고 있던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게 됐다”고 말하는 김 동문. 끼니 해결은 고사하고 콜레라로 죽어 가는 난민들에게 “식후 30분 후에 먹으라”고 건네는 약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가를 깨달은 것이다.
이때부터 김 동문은 아프리카에서 ‘의사’이자 ‘주방장’, 그리고 ‘선생님’이 되기도 했다. 진료뿐만 아니라 굶주린 환자들을 위해 음식을 구하러 다니고 그들에게 식사 제공했다. 의사의 진료와 처방보다도 근본적으로는 물을 정화하는 시설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식수 해결을 위해서도 직접 나섰다.
또한 “병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좋게 만들기 위해 예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의사의 의무”라고 생각한 그는 건강에 무지한 그들에게 살균이나 ADIS에 대한 교육도 함께 했다.
이후 2004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김 동문은 전주예수병원 원장을 맡게돼 2년째 맡은바 임무를 다해내고 있다. 리더로서 병원을 이끄는 일은 물론이고 직접 떠나지는 못하지만 파키스탄 지진 때 의료봉사 팀을 꾸려 보내는 등 직원들의 해외봉사활동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한 문화권에 갇힌 좁은 세상에서 살지 말고 자신 스스로 폭넓은 세계로 나오길 바란다”는 김 원장. 이것이 그가 의사로서 지위와 명예를 뒤로하고 아프리카로 떠날 수 있었던 용기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봉사는 의료인들의 삶이다”고 말하는 김 동문은 오늘도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을 멈추지 않는다.
전북대신문 우리나라 기자 wrnr@chonb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