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검사라는 직업은 어떨까? 단순히 이 세대가 원하는 상류층으로의 상승의 하나의 발판이 되는 직업일까? 아니면 정말 영화처럼 조직폭력배와 격투기도 하는 모습일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우리 두드림 5기 학생홍보팀은 서울고등검사 부장 이기동선배(법대 75학번)를 찾아가 보았다. 단순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동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그들이 생각하는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듣고 싶었다.
선배님을 찾아가는 길이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처음으로 가는 서울고등법원엔 일반인들이라도 들어가기 전에 신분증을 확인하고 또한 임시 출입증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삭막한 분위기와는 달리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선배는 후배인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단순히 인터뷰의 형식이 되는 것은 사양하고 ‘편안히 얘기나 하고 가라’는 말에 다른 사람이 아닌 후배만이 누리는 특권이란 생각이 들었다.
Q 선배님 언제 검사라는 직업이 자신과 가장 잘 맞는다고 기억되세요?
A 글쎄 87년도인가? 내가 검사가 되고 얼마 안될 때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동해까지 가서 마약사범을 잡은 것이 기억이 남네. 그땐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약사범을 소탕하러 배를 타고 막 좇아갔지. 근데 영화는 영화더라고 막상 배를 타니 배 멀미에 파도가 치니 제대로 서있기도 어렵지 뭐야 그래서, ‘이거 범인잡기 전에 내가 먼저 잡히겠네’ 라는 생각을 했지.
근데 있잖아. 그런 일을 겪고 보니 정말 검사라는 직업이 나에게 맞더라고. 내가 있는 분야가 강력부라 그런지 활동적이거든. 범인을 잡고 단순히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그 범인을 잡기 위해서, 6개월 심하면 1년 전부터 증거를 조사하고. 나에겐 그런 일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Q 지금 사회에선 검사라는 직업을 보면, 부러워하는데 검사라는 그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A 단순히 탁상공론식의 직업과 그런 사회관은 원하지 않아. 그러나, 정말 잘못알고 있는 것은 편안히 책상에만, 앉아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 매일 밤을 새고, 사람을 만나고 다니고. 17년 검사생활을 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들은 검사를 시켜도 검사에게 딸을 시집보내지 않아야지’ 라는 생각. 가족이 많이 힘들지. 17년 동안 20군데를 옮겨 다니면서, 아이들 교육과 여러 가지 일이 일정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Q 지방대라는 한계를 어떻게 느끼고 계시는지요.
A 지방대라는 면에 있어서 이사회는 참 평등하다고 생각이 드네. 자신의 성과와 그에 맞는 직위를 주니까 말이야. 난 지금 부장이지. 그러나 이것이 비단 서울대나 고려대, 소위 말하는 명문대 위주의 인사발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것은 검사라는 직업이 어쩜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겠네.
Q 많은 후배들은 지금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막상 사회에선 지방대라는 그 점에서 현실이 벽이 높다고 하는데요. 선배님의 생각은 어떤지요?
A 현실의 벽을 무시할 수는 없지. 나 때만 해도 전북대의 전체학생수는 6,000명이었지. 내가 법대 출신인데 그때 만해도 법대는 20명이었어. 소수인원으로 전북대를 들어왔다는 자부심, 단지 서울로 못가서가 아니라 서울로도 갈수 있는 현실에서 내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에 전북대로 진로를 택한 것이고, 그것에 후회는 없지. 대학졸업 후에 7년간 독학을 하는 생활 중에서도 난 내가 서울의 명문대를 택했으면 이 시간이 더 줄어들었겠지라는 후회한번 한 적 없거든. 막상 사회에 나와서는 자신의 역량이라고 생각이 들어. 물론 그 사회에 나오는 것마저 현실이 막는다고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정말 자신이 열심히 노력했냐고 되물어 주고 싶어. 그 질문에 난 NO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 후배들이 정말 열심히 사회의 벽을 넘으려고 했는가에 대해서 말이지. 물론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생각하라는 것은 아니지. 그러나 4학년 시절, 그 1년 가지고 현실의 벽을 말하기에는 조금은 늦다는 거지.
한 예로 서울의 학교 같은 경우 그들이 하는 노력은 가히 상상불허지. 친구들과 매일 이 회사 저 회사 인턴을 알아보고 다니고, 또한 수업료가 일단은 어학연수비랑 같기에 외국에 1,2년 가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지. 그것에 반해 우린 아직 그 속도와 사회를 피부로 느끼는 것은 서울보단 느리게 보여.
이점에 있어서는 지방이란 생각보단, 자신이 발로 뛰고 다른 학교 홈페이지 등에서도 좋은 정보를 얻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잠깐이지만, 선배의 고마운 사람이 어떤 높은 직업의 판사나, 혹은 교수가 아닌 늘 함께 있고 그러기에 그 존재감이 적지만,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이란 말에, 그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현 못하는 우리를 돌아봤습니다.
이렇게 이기동 선배와의 만남은 그가 이 사회의 공공의 적을 잡고 또한 우리 후배들에게 ‘할 수 있다’ 라는 자신의 신념을 얘기해준 것에 그치지 않고, 소중한 가족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기에 더욱 따뜻한 만남이 되었습니다.
글쓴이 5기 학생홍보팀 장성욱
*이기동 동문은 2월 13일자 법무부 인사이동에 따라 광주지검 형사 2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런 궁금증을 갖고, 우리 두드림 5기 학생홍보팀은 서울고등검사 부장 이기동선배(법대 75학번)를 찾아가 보았다. 단순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동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그들이 생각하는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듣고 싶었다.
선배님을 찾아가는 길이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처음으로 가는 서울고등법원엔 일반인들이라도 들어가기 전에 신분증을 확인하고 또한 임시 출입증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삭막한 분위기와는 달리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선배는 후배인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단순히 인터뷰의 형식이 되는 것은 사양하고 ‘편안히 얘기나 하고 가라’는 말에 다른 사람이 아닌 후배만이 누리는 특권이란 생각이 들었다.
Q 선배님 언제 검사라는 직업이 자신과 가장 잘 맞는다고 기억되세요?
A 글쎄 87년도인가? 내가 검사가 되고 얼마 안될 때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동해까지 가서 마약사범을 잡은 것이 기억이 남네. 그땐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약사범을 소탕하러 배를 타고 막 좇아갔지. 근데 영화는 영화더라고 막상 배를 타니 배 멀미에 파도가 치니 제대로 서있기도 어렵지 뭐야 그래서, ‘이거 범인잡기 전에 내가 먼저 잡히겠네’ 라는 생각을 했지.
근데 있잖아. 그런 일을 겪고 보니 정말 검사라는 직업이 나에게 맞더라고. 내가 있는 분야가 강력부라 그런지 활동적이거든. 범인을 잡고 단순히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그 범인을 잡기 위해서, 6개월 심하면 1년 전부터 증거를 조사하고. 나에겐 그런 일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Q 지금 사회에선 검사라는 직업을 보면, 부러워하는데 검사라는 그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A 단순히 탁상공론식의 직업과 그런 사회관은 원하지 않아. 그러나, 정말 잘못알고 있는 것은 편안히 책상에만, 앉아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 매일 밤을 새고, 사람을 만나고 다니고. 17년 검사생활을 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들은 검사를 시켜도 검사에게 딸을 시집보내지 않아야지’ 라는 생각. 가족이 많이 힘들지. 17년 동안 20군데를 옮겨 다니면서, 아이들 교육과 여러 가지 일이 일정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Q 지방대라는 한계를 어떻게 느끼고 계시는지요.
A 지방대라는 면에 있어서 이사회는 참 평등하다고 생각이 드네. 자신의 성과와 그에 맞는 직위를 주니까 말이야. 난 지금 부장이지. 그러나 이것이 비단 서울대나 고려대, 소위 말하는 명문대 위주의 인사발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것은 검사라는 직업이 어쩜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겠네.
Q 많은 후배들은 지금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막상 사회에선 지방대라는 그 점에서 현실이 벽이 높다고 하는데요. 선배님의 생각은 어떤지요?
A 현실의 벽을 무시할 수는 없지. 나 때만 해도 전북대의 전체학생수는 6,000명이었지. 내가 법대 출신인데 그때 만해도 법대는 20명이었어. 소수인원으로 전북대를 들어왔다는 자부심, 단지 서울로 못가서가 아니라 서울로도 갈수 있는 현실에서 내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에 전북대로 진로를 택한 것이고, 그것에 후회는 없지. 대학졸업 후에 7년간 독학을 하는 생활 중에서도 난 내가 서울의 명문대를 택했으면 이 시간이 더 줄어들었겠지라는 후회한번 한 적 없거든. 막상 사회에 나와서는 자신의 역량이라고 생각이 들어. 물론 그 사회에 나오는 것마저 현실이 막는다고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정말 자신이 열심히 노력했냐고 되물어 주고 싶어. 그 질문에 난 NO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 후배들이 정말 열심히 사회의 벽을 넘으려고 했는가에 대해서 말이지. 물론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생각하라는 것은 아니지. 그러나 4학년 시절, 그 1년 가지고 현실의 벽을 말하기에는 조금은 늦다는 거지.
한 예로 서울의 학교 같은 경우 그들이 하는 노력은 가히 상상불허지. 친구들과 매일 이 회사 저 회사 인턴을 알아보고 다니고, 또한 수업료가 일단은 어학연수비랑 같기에 외국에 1,2년 가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지. 그것에 반해 우린 아직 그 속도와 사회를 피부로 느끼는 것은 서울보단 느리게 보여.
이점에 있어서는 지방이란 생각보단, 자신이 발로 뛰고 다른 학교 홈페이지 등에서도 좋은 정보를 얻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잠깐이지만, 선배의 고마운 사람이 어떤 높은 직업의 판사나, 혹은 교수가 아닌 늘 함께 있고 그러기에 그 존재감이 적지만,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이란 말에, 그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현 못하는 우리를 돌아봤습니다.
이렇게 이기동 선배와의 만남은 그가 이 사회의 공공의 적을 잡고 또한 우리 후배들에게 ‘할 수 있다’ 라는 자신의 신념을 얘기해준 것에 그치지 않고, 소중한 가족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기에 더욱 따뜻한 만남이 되었습니다.
글쓴이 5기 학생홍보팀 장성욱
*이기동 동문은 2월 13일자 법무부 인사이동에 따라 광주지검 형사 2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