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과 졸업생, 63세 김명엽씨 대학원도 진학-
지난 22일 우리 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늦깎이 졸업생 김명엽(여·63)씨는 예순이 넘어 학사모를 쓰게 됐다. 입학할 때만 해도 학사모를 쓸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섰던 그이지만 학사모 앞에서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냈다는 기쁨이 가득하다.
사학과의 ‘왕언니’ 김명엽씨는 지난 2001년 타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다가 2003년 우리 대학 사학과로 편입, 장학금 한번 놓친 적 없는 전 성적 평균 95점 이상의 높은 점수로 학사학위를 받게 됐다.
김씨는 졸업 후 대학원 사학과에 입학했다. 끝없는 배움의 열정이 그를 대학으로 이끌더니 이제는 석사학위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결혼하며 몇 십년간 남편과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김씨는 틈틈이 영어와 중국어, 컴퓨터 등 꾸준히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우리 대학 어학원은 10년 전부터 다니기 시작했고 정보전산원 실버강의도 일일이 찾아 들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01년 대학입시를 꿈꾸며 수능시험을 보고 꿈에도 그리던 대학생이 된 것. 하지만 당시 고배를 마셔야 했던 우리 대학에 다니기 위해 편입을 공부, 다시 사학과에 편입학하게 됐다.
사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은 역사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밑에서 역사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그다.
늦깎이 대학생으로 입학당시부터 화제가 됐던 김씨지만 그러한 눈길이 당시에는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학교를 모두 마칠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섰다. 하지만 김씨는 스스로를 이겨냈다. 게다가 매 수업 예습과 복습을 빼놓지 않았고 수업노트는 매일 컴퓨터로 다시 정리했다. 방학은 3학기라고 여기며 지난 학기를 다시 정리하고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도서관에서 매일 지내다시피 했다.
“젊은 학생들은 한번만 봐도 이해할 내용인데, 나는 10번은 봐야 정리가 되고 내용이 머리에 들어와요. 열심히 하는 수밖에 더 있나. 남들이 한번할 때 두세번 봤더니 성적이 좋게 나오더군요. 또 나이가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해서 지각 한번 할 수 없었죠.”
매번 장학금 수령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지만 김씨는 거기까지만 만족했다. 장학금은 젊은 학생들의 몫이라는 생각에 모두 양보하였던 것이다.
가정주부로 평생을 보내던 그가 공부를 하는데 있어 가족의 도움이 컸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남편과 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의 도움으로 입시학원도 다니지 않고 수능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학사에서 석사까지 이제 만족할만하지만 그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2월 말에는 학교를 다니며 틈틈이 썼던 수필로 문예잡지에서 신인상을 받게 되었고 ‘TV 퀴즈프로’에도 도전했다. 그의 끊임없는 배움의 열정과 그에 따른 도전은 모두 스스로 만족하고 즐겁기 때문이다.
“해야 한다고 하면 못했을지도 몰라요. 스스로 즐겁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 4년내내 즐거웠죠. 그리고 후배들에게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요. 오늘이 내 남은 생애의 가장 젊은 날이고 젊음을 무기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 달라고요.”
지난 22일 우리 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늦깎이 졸업생 김명엽(여·63)씨는 예순이 넘어 학사모를 쓰게 됐다. 입학할 때만 해도 학사모를 쓸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섰던 그이지만 학사모 앞에서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냈다는 기쁨이 가득하다.
사학과의 ‘왕언니’ 김명엽씨는 지난 2001년 타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다가 2003년 우리 대학 사학과로 편입, 장학금 한번 놓친 적 없는 전 성적 평균 95점 이상의 높은 점수로 학사학위를 받게 됐다.
김씨는 졸업 후 대학원 사학과에 입학했다. 끝없는 배움의 열정이 그를 대학으로 이끌더니 이제는 석사학위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결혼하며 몇 십년간 남편과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김씨는 틈틈이 영어와 중국어, 컴퓨터 등 꾸준히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우리 대학 어학원은 10년 전부터 다니기 시작했고 정보전산원 실버강의도 일일이 찾아 들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01년 대학입시를 꿈꾸며 수능시험을 보고 꿈에도 그리던 대학생이 된 것. 하지만 당시 고배를 마셔야 했던 우리 대학에 다니기 위해 편입을 공부, 다시 사학과에 편입학하게 됐다.
사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은 역사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밑에서 역사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그다.
늦깎이 대학생으로 입학당시부터 화제가 됐던 김씨지만 그러한 눈길이 당시에는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학교를 모두 마칠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섰다. 하지만 김씨는 스스로를 이겨냈다. 게다가 매 수업 예습과 복습을 빼놓지 않았고 수업노트는 매일 컴퓨터로 다시 정리했다. 방학은 3학기라고 여기며 지난 학기를 다시 정리하고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도서관에서 매일 지내다시피 했다.
“젊은 학생들은 한번만 봐도 이해할 내용인데, 나는 10번은 봐야 정리가 되고 내용이 머리에 들어와요. 열심히 하는 수밖에 더 있나. 남들이 한번할 때 두세번 봤더니 성적이 좋게 나오더군요. 또 나이가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해서 지각 한번 할 수 없었죠.”
매번 장학금 수령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지만 김씨는 거기까지만 만족했다. 장학금은 젊은 학생들의 몫이라는 생각에 모두 양보하였던 것이다.
가정주부로 평생을 보내던 그가 공부를 하는데 있어 가족의 도움이 컸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남편과 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의 도움으로 입시학원도 다니지 않고 수능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학사에서 석사까지 이제 만족할만하지만 그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2월 말에는 학교를 다니며 틈틈이 썼던 수필로 문예잡지에서 신인상을 받게 되었고 ‘TV 퀴즈프로’에도 도전했다. 그의 끊임없는 배움의 열정과 그에 따른 도전은 모두 스스로 만족하고 즐겁기 때문이다.
“해야 한다고 하면 못했을지도 몰라요. 스스로 즐겁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 4년내내 즐거웠죠. 그리고 후배들에게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요. 오늘이 내 남은 생애의 가장 젊은 날이고 젊음을 무기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 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