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가족 여러분!
10월 15일, 우리대학이 일흔여섯 번째 생일을 맞게 됩니다. 눈이 맑아지고 마음이 깊어지는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대학이 설립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대학이 어떻게 76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는지, 왜 10월 15일을 개교기념일로 정했는지 자세히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1987년까지만 해도 우리대학 개교 연월일은 1952년 6월 8일이었습니다. 우리대학이 국립 전북대학교로서 제1회 개교식을 연 날을 개교기념일로 본 것입니다.
한때 호남․충청지역 최초의 국립대학이라는 표현은 이에 근거한 것으로, 우리대학 개교식이 광주의 또 다른 국립대학보다 하루 더 빨랐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국립 전북대학교가 설립되기 이전에 그 모체가 된 도립 이리농과대학과 전주 명륜대학, 군산대학관이 있었고, 이들을 통합하여 전북대학교가 설립되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개교식이 있기 전인 1952년 3월 23일에 농과대학 졸업생들이 국립 전북대학교 졸업생으로 학위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1952년 6월 8일 개교한 전북대학교의 1회 졸업생이 같은 해 3월에 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행정적으로도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로 1987년 4월 28일 학무회의에서 개교 원년을 도립 이리농과대학 설립 연도인 1947년으로 변경하고, 개교일은 종전대로 6월 8일로 하는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이후에 개교일을 6월 8일로 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며, 도립 이리농과대학 인가일인 10월 15일로 변경하자는 의견이 제안되었고, 구성원과 동창회의 여론수렴을 거쳐 1991년 11월 5일 열린 학무회의에서 개교기념일을 10월 15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대학의 개교 연월인은 1947년 10월 15일이 된 것이며, 1992년 10월 15일에 개교 45주년 기념식을 개최하면서부터 지금의 10월 개교기념일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우리대학의 개교기념일 변천사를 굳이 말씀드린 이유는 우리대학 역사 기록 하나하나가 전북대학교를 빛내온 선배 분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이며, 우리의 자랑이고, 오늘의 거울이자, 미래의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대학은 1947년 설립 인가를 받은 도립 이리농과대학과 전주 명륜대학, 그리고 군산대학관이 모태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국립 전북대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는 전북 도민들의 열망은 뜨거웠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대학은 지역적으로 전북의 세 중심도시, 전주와 익산, 군산에 모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조선황실과 향교재단, 전북 도민들의 절대적 후원을 받은 지역의 대학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우리대학은 전라북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세월의 부침 속에서도 우리대학이 지역 발전을 주도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소명을 흔들림 없이 수행해온 이유입니다.
우리 전북대학교 76년 역사 속에는 수많은 분들의 열정과 땀이 녹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전북대인의 길을 먼저 가신 모든 분들의 헌신과 25만 동문, 그리고 200만 전북 도민의 뜨거운 성원은 전북대학교가 존재해야 할 이유입니다. 전북대 모든 가족을 대신하여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현재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 교수님과 직원 선생님, 학생들의 열정이 없었다면 세계로 뻗어가는 지금의 전북대학교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학발전을 이끌고 계시는 대학 가족 여러분께도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오늘 장기근속표창을 받으신 교직원 여러분께는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대학의 산 역사입니다.
더불어 오늘 수상의 영예를 안으신 교직원 여러분과 우수부서 구성원들께도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여러분의 땀과 열정이 우리대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존경하는 대학 가족 여러분!
전국의 모든 지방대학들이 그렇듯이 현재 우리대학은 큰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큰 파고는 대학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과감한 혁신과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지금 아무리 잘나가는 대학이라고 해도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우리대학이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유치해 새로운 도약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것도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반드시 기회로 만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76년의 전통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오늘,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미래를 연결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대학 가족들의 열망이 하나로 모아졌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우리대학은 글로컬대학30 사업 본지정을 위한 실행계획서를 제출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전북과 지역대학을 살리는 플래그십 대학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교육과 지역․산학협력, 글로벌 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10가지 혁신 과제를 수립하였습니다.
우리 대학 가족들께서는 이런 혁신의 과정이 뼈를 깎는 고통의 과정이 될 것임을 잘 알면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대학의 도약과 지역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언제나 함께해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쌀 한 톨을 밥그릇만 하게 만들라’던 이리농과대학 입학식사의 한 대목을 떠올립니다. 저는 이것이 함께 고통을 감내하고 극복해내며, 결국은 목표를 성취해내는 우리 전대인들의 혁신 DNA라 생각합니다.
우리 전북대학교의 혁신은 우리대학의 역사가 시작된 첫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혁신은 76년 동안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으며, 미래 100년 그 너머에서도 멈춰서는 안 되는 소명인 것입니다.
찰스 다윈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종은 강한 종이 아니라 변화하는 종이라 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변화만이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며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새로운 도약의 시점에서 저는 우리대학 혁신의 길을 찾겠습니다. 우리 모두 어깨 걸고 대학과 지역의 상생 발전을 향해 혁신의 길로 나아갑시다. 그러면 그 길,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대학 가족 여러분! 10월 15일, 우리대학이 일흔여섯 번째 생일을 맞게 됩니다. 눈이 맑아지고 마음이 깊어지는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대학이 설립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대학이 어떻게 76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는지, 왜 10월 15일을 개교기념일로 정했는지 자세히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1987년까지만 해도 우리대학 개교 연월일은 1952년 6월 8일이었습니다. 우리대학이 국립 전북대학교로서 제1회 개교식을 연 날을 개교기념일로 본 것입니다. 한때 호남․충청지역 최초의 국립대학이라는 표현은 이에 근거한 것으로, 우리대학 개교식이 광주의 또 다른 국립대학보다 하루 더 빨랐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국립 전북대학교가 설립되기 이전에 그 모체가 된 도립 이리농과대학과 전주 명륜대학, 군산대학관이 있었고, 이들을 통합하여 전북대학교가 설립되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개교식이 있기 전인 1952년 3월 23일에 농과대학 졸업생들이 국립 전북대학교 졸업생으로 학위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1952년 6월 8일 개교한 전북대학교의 1회 졸업생이 같은 해 3월에 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행정적으로도 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로 1987년 4월 28일 학무회의에서 개교 원년을 도립 이리농과대학 설립 연도인 1947년으로 변경하고, 개교일은 종전대로 6월 8일로 하는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이후에 개교일을 6월 8일로 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며, 도립 이리농과대학 인가일인 10월 15일로 변경하자는 의견이 제안되었고, 구성원과 동창회의 여론수렴을 거쳐 1991년 11월 5일 열린 학무회의에서 개교기념일을 10월 15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대학의 개교 연월인은 1947년 10월 15일이 된 것이며, 1992년 10월 15일에 개교 45주년 기념식을 개최하면서부터 지금의 10월 개교기념일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우리대학의 개교기념일 변천사를 굳이 말씀드린 이유는 우리대학 역사 기록 하나하나가 전북대학교를 빛내온 선배 분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이며, 우리의 자랑이고, 오늘의 거울이자, 미래의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대학은 1947년 설립 인가를 받은 도립 이리농과대학과 전주 명륜대학, 그리고 군산대학관이 모태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국립 전북대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는 전북 도민들의 열망은 뜨거웠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대학은 지역적으로 전북의 세 중심도시, 전주와 익산, 군산에 모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조선황실과 향교재단, 전북 도민들의 절대적 후원을 받은 지역의 대학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우리대학은 전라북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세월의 부침 속에서도 우리대학이 지역 발전을 주도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소명을 흔들림 없이 수행해온 이유입니다. 우리 전북대학교 76년 역사 속에는 수많은 분들의 열정과 땀이 녹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전북대인의 길을 먼저 가신 모든 분들의 헌신과 25만 동문, 그리고 200만 전북 도민의 뜨거운 성원은 전북대학교가 존재해야 할 이유입니다. 전북대 모든 가족을 대신하여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현재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 교수님과 직원 선생님, 학생들의 열정이 없었다면 세계로 뻗어가는 지금의 전북대학교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학발전을 이끌고 계시는 대학 가족 여러분께도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오늘 장기근속표창을 받으신 교직원 여러분께는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대학의 산 역사입니다. 더불어 오늘 수상의 영예를 안으신 교직원 여러분과 우수부서 구성원들께도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여러분의 땀과 열정이 우리대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존경하는 대학 가족 여러분! 전국의 모든 지방대학들이 그렇듯이 현재 우리대학은 큰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큰 파고는 대학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과감한 혁신과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지금 아무리 잘나가는 대학이라고 해도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우리대학이 글로컬대학30 사업을 유치해 새로운 도약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것도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반드시 기회로 만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76년의 전통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오늘,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미래를 연결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대학 가족들의 열망이 하나로 모아졌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우리대학은 글로컬대학30 사업 본지정을 위한 실행계획서를 제출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전북과 지역대학을 살리는 플래그십 대학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교육과 지역․산학협력, 글로벌 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10가지 혁신 과제를 수립하였습니다. 우리 대학 가족들께서는 이런 혁신의 과정이 뼈를 깎는 고통의 과정이 될 것임을 잘 알면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대학의 도약과 지역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언제나 함께해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쌀 한 톨을 밥그릇만 하게 만들라’던 이리농과대학 입학식사의 한 대목을 떠올립니다. 저는 이것이 함께 고통을 감내하고 극복해내며, 결국은 목표를 성취해내는 우리 전대인들의 혁신 DNA라 생각합니다. 우리 전북대학교의 혁신은 우리대학의 역사가 시작된 첫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혁신은 76년 동안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으며, 미래 100년 그 너머에서도 멈춰서는 안 되는 소명인 것입니다. 찰스 다윈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종은 강한 종이 아니라 변화하는 종이라 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변화만이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며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새로운 도약의 시점에서 저는 우리대학 혁신의 길을 찾겠습니다. 우리 모두 어깨 걸고 대학과 지역의 상생 발전을 향해 혁신의 길로 나아갑시다. 그러면 그 길,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