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이후 50년간 유지돼 온 고교 문·이과 장벽 폐지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대입 전형 간소화 및 대입 발전방안 시안’에 수능 개편안의 하나로 문·이과 완전 융합안이 포함되면서다. 고교 교육과 수능에서 문·이과 구분이 없어져야 한다는 데엔 교사·학부모·대학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학문 간 협업이 중요한 시대에 우리는 고교 때부터 인문학과 과학에 문외한인 ‘절름발이 인재’를 기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충남 서산시 서령고 최진규 교사는 “아이들의 재능은 다양한데 획일적으로 문·이과를 나누다 보니 고3 때 갑자기 진로를 바꾸는 학생이 생기는 등 혼란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준비 중인 융합안은 모든 학생에게 수능에서 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한국사를 필수로 응시하게 하는 방안이다. 2002년 제7차 교육과정 도입 이후 명목상으로는 교육과정에서 문·이과 구분이 없어졌다. 하지만 수능에선 사회와 과학을 동시에 볼 수 없게 돼 있어 고교에선 여전히 고2 때부터 문·이과를 나눠 수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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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수 위주 안 바꾸면 학생만 힘들어져
문·이과 구분이 유지된 건 국·영·수 위주의 입시교육 탓이 크다. 일반고 학생은 졸업을 위해 3년간 204단위(1단위는 한 학기 주당 한 시간 수업)를 이수해야 한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교과 최소 이수단위’가 116단위, 학교자율과정 64단위, 그리고 동아리·봉사활동 등 창의적 체험활동이 24단위다. 학교자율과정은 원래 진로지도를 위한 시간이지만 거의 국·영·수 수업으로 채워진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11년 전국 일반고 1462곳에 자율과정을 편성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을 물었더니 58.7%의 학교가 ‘대입에 필요한 교과목’을 꼽았다. 실제로 자율과정의 86.2%는 국·영·수 수업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문·이과 융합교육을 위해선 수능이 지금보다 쉬워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무성 대변인은 “수능을 기초학력평가 수준으로 쉽게 내지 않으면 오히려 학생들에게 사회·과학 공부 부담만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과학과목 통합해 새 교과서 만들어야
수능에서 문·이과 구분이 사라져도 대학이 전형요강을 바꾸지 않으면 문·이과 폐지는 불가능하다. 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상위권 대학들이 인문계열은 사회, 자연계열은 과학 점수를 강조해 사실상 문·이과 구분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 고3 대상의 2014학년도 서울 지역 대학 수시전형을 살펴보면 인문계열 학과는 사회탐구, 자연계열 학과는 과학탐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합격에 유리한 곳이 대부분이다.
입시를 넘어 근본적인 교육과정 개편도 필요하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문·이과 융합이 이뤄지려면 사회와 과학 과목을 통합하고 새로운 교과서를 개발하는 등 교육과정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 교육과정에서 사회 과목은 10개, 과학 과목은 8개로 쪼개져 있다. 학교와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취지였지만 고교 때부터 학문을 지나치게 세분화해 가르친다는 비판이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네 과목을 묶어서 가르치는 ‘융합과학’ 교과서가 2011년 나왔지만 일부 고교에서만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부터 도입되는 ‘공통사회’ 교과서는 아직 개발 중이다. 사범대 등 교사 양성기관에선 학과 통폐합이 불가피하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고 최우성 교사는 “사회·과학 과목이 통합되면 교사 간 자리다툼이 벌어질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이공계는 대학서 기초수학 보완 교육을
대학 교육과정 역시 변해야 한다. 융합안이 현실화되면 수능에서 수학의 출제 범위가 현재 문과 수준 혹은 문·이과의 중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이공계 학생들의 학력 저하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김경범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교수는 “대학이 이공계 신입생을 위한 기초수학이나 교양 과정을 개설해 맞춤형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적용 시기는 당초 계획보다 늦출 수 있지만 이번 발표를 계기로 문·이과 융합 논의를 본격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신동희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는 “문·이과 융합을 위해선 교육 외에 학계·산업계 등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