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K대 특수대학원 석사과정에는 모두 100명이 입학했다. 국가정보원 직원을 포함한 공무원이 26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소기업 대표와 기업체 임원, 연예인도 있었다. 이들 중 92명이 석사 논문을 쓰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특수대학원 관계자는 "트로트 가수가 쉰이 넘은 나이에 왜 석사학위를 받으려고 하는지, 전직 장관이 이런 야간 대학원에 왜 다니는지 모르겠다"며 "솔직히 얘기해서 92개 논문 대부분이 대학생 리포트만도 못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석ㆍ박사의 나라`가 되고 있다. 승진을 앞둔 공무원과 직장인들이 석ㆍ박사 학위 따기에 나서고 있고 식당 주인과 코미디언들도 어려운 석ㆍ박사 논문을 척척 써내고 있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교육 통계에 따르면 박사과정 입학생은 2000년 1만1705명에서 지난해 2만3328명까지 증가했다. 12년 사이에 배 가까이 늘었다.
이처럼 박사과정 입학생이 급증하는 것은 `석ㆍ박사학위`를 성공을 위한 마패나 부적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직장인 최성만 씨(37ㆍ가명)는 3월부터 서울 소재 대학의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최씨는 "석사를 마친 사람들이야 쓸데없다고 하지만 지난번 인사에서도 물을 먹고 나니 뭔가 학위라도 해서 포장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졌다"며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박형태 씨(43ㆍ가명)는 회사를 다니면서 박사과정 2년차 과정을 밟고 있다. 주중 하루는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에 가기 전날에는 밤샘 근무를 도맡아서 하고 있다. 박씨는 "회사는 언제 잘릴지 모르고 박사학위라도 있으면 후일을 도모하기에 낫지 않을까 싶어 다닌다"고 말했다.
최근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모든 직장들이 학위를 직무 능력의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1∼2012년 전국 박사과정 졸업생 6891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52.6%가 직장을 다니며 박사과정을 밟았다. 일선 경찰서 과장급(경위ㆍ경감)들도 행정대학원 등에 다닌다. 총경인사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다. 서울시내 일선서 한 형사과장은 "요즘은 (과장급들이) 석사는 다 하는 것 같다"며 "승진 가산점도 미미하지만 남들이 다 하다 보니 안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대학들은 학위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직장인을 위해 야간ㆍ주말 대학원 과정을 늘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최근에는 직장인을 타깃으로 한 박사과정생을 모집하는 학교들도 나타났다.
어차피 설립 목적 자체가 학위 장사를 위한 과정이기 때문 매년 몇백 편씩 쏟아지는 논문들은 부실해 질 수밖에 없다. 일부 대학원들은 쉽게 학위 논문을 만드는 법을 직접 가르치기도 한다.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직장인 김 모씨는 "사실 논문에 회귀 분석이 나오지만 통계 프로그램을 어떻게 돌리는지도 알지 못한다"며 "학교에서도 논문 수준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라고 설명했다. 직장인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많은 대학원을 다니는 한 직장인은 "우리 대학원에서는 사실 남의 연구라도 본인이 옮겨 쓰기라도 하면 자기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대학에서도 국내 대학 박사과정 운영에 대한 염려가 터져나오고 있다.
유영학 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직장 생활하면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는다는 얘기는 외국에서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박사학위 과정을 직장 생활과 병행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석ㆍ박사 과정에서 연구 윤리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도 현실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대학원생 김민수 씨(28)는 "여전히 검증을 철저히 안 하니 대충 베껴서 내도 안 걸리기 때문에 힘 빼지 말자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