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세탁? 꿈도 꾸지 마 ‘성적 거품’ 빼는 대학가 [중앙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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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1 00:52 입력 / 2010.05.01 01:00 수정
‘절대평가 폐지 반대한다.’
연세대 백양로에 걸린 플래카드다. 지난 2월 학교 측이 전공 심화 과목에 적용되던 절대평가를 폐지하기로 하자 학생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전공 심화 과목을 기피해 참여를 높이고자 절대평가를 도입했지만 학점을 쉽게 따는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총학생회 측은 “취업난으로 다른 학교 학생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우리만 불이익을 볼 것”이라며 항의했다. 결국 학교 측은 시행을 잠정 보류했지만 “다음 학기엔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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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A폭격기’(학점을 후하게 주는 교수나 그런 과목) 잡기에 나섰다. 학점 인플레 현상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중앙대도 지난해 절대평가 전면 폐지 등을 골자로 학사제도를 개편했다.
◆F학점의 천재는 옛말=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F학점에 대해 다소 낭만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당시 신촌의 한 생맥주 집에선 F학점이 들어간 성적표를 제시하면 2000cc를 공짜로 주기도 했다. 85년 입학한 정은혜(44·여)씨는 “학점보다는 정의와 명분을 더 중요시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93년 대학에 들어온 전수호(36)씨는 “초·중·고 12년 동안 공부만 했다는 생각에 대학에 와서는 노는 데 더 열중했었다”며 “학점을 높이기 위해 성적이 부진한 과목을 재수강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98년 대학에 간 차동인(31)씨는 “우리 세대는 F학점을 두려워했다”고 했다. 외환위기 직후 대학에 입학해 취업에 실패하는 선배들을 봤기 때문이다. 자신들 역시 아버지의 사업 부도 등 경제적 아픔을 겪었다. 차씨는 “풍요롭게 자란 우리에게 외환위기는 충격이었고 그만큼 철이 들었다”고 했다. 대학 4학년인 이현명(25)씨에게 F학점은 ‘주홍글씨’다. F학점이 있는 성적표를 들고 면접장에 가는 건 불성실하다는 주홍글씨를 달고 가는 것이란 얘기다.
◆취업용 성적표를 아시나요=중앙대는 지난해 학사제도를 개편하며 취업용 성적표를 폐지했다. 취업용 성적표에는 F학점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만큼 성적이 높아진다. 학점포기제도 역시 성적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성적이 나쁜 과목을 수강한 적이 없는 것처럼 성적표에서 지우는 것이다. 이 같은 제도는 대부분 학생들의 요구로 도입됐다. 10여 년 전 일이다.
학생들의 요구는 더 까다로워졌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김은정(36·여)씨는 지난해 한 학생으로부터 ‘기여도도 평가해 달라’는 e-메일을 받았다. 팀 과제에서 팀원이 열심히 하지 않아 불이익을 입었다며 과제에 기여를 많이 한 자신의 학점을 높여 달라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학생들이 불이익에 민감하다”며 “수강생이 100명이 넘는 강의도 매 수업 출석을 부른다”고 했다. 중앙대 이나영 (사회학) 교수는 “90년대 후반 이후 경쟁이 일반화되고 세계화되면서 대학과 학생 모두 경쟁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