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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잔' 승동표 화백 작품 박물관서 만난다
홍보부 | 2013-03-08 | 조회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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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인상파의 냉철한 분석과 자유로움을 작품에 구현하며 ‘한국의 세잔’이라 불리는 故승동표 화백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우리대학 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승 화백의 아들로 우리대학에 근무하고 있는 승수근 선생이 그동안 보관해왔던 서양화 작품들을 전시 및 교육, 연구용으로 박물관에 기탁했기 때문이다.
승 선생이 이번에 기탁한 작품은 승 화백이 1955년부터 1996년 사이에 그렸던 정물과 인물, 풍경 등 모두 75점이다.
승 선생이 부친의 작품을 기탁하게 된 것은 지난해 신축한 박물관의 수장시설의 안전성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친의 작품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이번 작품들은 앞으로 박물관 정리 작업을 마친 뒤 학생과 지역민들을 위한 전시회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승 선생은 “그동안 아버님의 다양한 작품들을 보관해오며 이 작품들이 연구와 교육을 위해 활용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며 “수장시설이 매우 우수한 우리대학 박물관을 통해 작품의 안전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태영 박물관장은 “소중한 작품 기탁을 통해 우리지역의 소중한 작가인 故승동표 화백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승 화백의 작품 기탁을 통해 크고 작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에 대한 기증 문화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하며, 지역민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승동표 화백은?
승동표 화백은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1936년 오산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에 제1회 전조선학생 미술전람회에서 ‘꽃다발이 있는 정물’로 특선을 수상하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오산고보에서 이중섭, 문학수, 김창복 등과 함께 임파 임용련 선생에게 미술지도를 받았다. 1938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모교인 오산고보에서 미술교사를 역임했다. 한국전쟁으로 월남을 하게 되었고, 1951년 남원농업학교와 정읍중학교 미술교사로부터 1982년 고산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화단과는 교류를 끊고 살았다. 그는 그렇게 화단에서 잊혀져 갔다.
승동표 화백은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미술관 개관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통해 소개되었고,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잊혀진 미술작가 발굴전’의 첫 순서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후기 인상파의 냉철한 분석과 자유로움을 구현함으로써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과 2008년에는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개최한 전시를 통해 전북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감동을 주기도 하였다.
작품기탁(왼쪽부터 승수근 선생, 이태영 박물관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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